introduction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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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개요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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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를 다양성의 시각에서 준비한다는
					창설 이념을 바탕으로 
					서울대 불어 불문학과는 
					전세계 불어 문화권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제고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불어불문학과의 창설은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족 해방과 민족 문화의 창달이라는 이념 아래 설립된 서울대학교와 더불어 태어난 불어불문학과는 서울대학교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왔다. 새로운 시대, 자주적 미래의 모색이라는 역사적 당위로 해방 공간의 지성은 사유의 다양화라는 방법론을 설정하였고, 강대국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신생국이라는 우리의 엄연한 현실 앞에 근대 문명의 주도권을 행사해 온 서구 사회의 이해와 이의 발전적 수용이라는 실질적 방식이 요청되었다. 이에 서울대학교의 개교와 더불어 불어불문학과가 창설된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예지는, 한 사회를 관찰하고 배우고자 할 때 그 사회의 외적 실체만을 눈여겨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외적인 실체를 이루어낸 내적인 요체를 찾는 것인 까닭에, 불문학과를 만든 것은 프랑스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회의 정신적 활동의 구체적이며 총체적인 표출 방식인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고 강의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특정 사회의 문물을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방식으로 모방하고 수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꽃피워 낸 정신적 자양을 섭취하여 궁극적으로는 독자적인 창조능력을 배양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현대문학의 전개에 불문학이 끼친 영향이라든가, 불어불문학과에서 수학한 여러 문필가들이 한국 문단에 기여한 정도를 살펴보면, 우리 과의 창설 목적은 상당한 수준으로 성취되었다 할 수 있다. 또 우리 학계와 문화계는 물론, 일반의 사고 및 형태 전반이 걷고 있는 신대륙 편향성을 반성해 볼 때, 다양성의 추구라는 과의 창설 이념은 아직도 그 시사성을 잃지 않고 있다.

창설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제2외국어 가운데 불어 사용 인구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어서 처음부터 많은 졸업생을 배출해 낼 수는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서구 각국의 다양한 문화, 그 가운데 독특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프랑스 문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의 폭이 확대되어, 날이 갈수록 한국과 프랑스 사이의 언어 장벽을 극복하여 직접적인 교류의 길을 트려는 실질적인 노력이 증대되었다. 따라서, 고등학교에 불어 교육이 점차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불어 사용 인구의 증가에 힘입어 불어불문학과의 성가는 날로 높아져 갔다.

1946년 전임으로 취임하여 1985년에 정년 퇴임한 이휘영 교수는 초창기의 갖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과를 본 궤도에 올려놓는 데 크게 진력하였으며, 사전을 편찬하는 등 불어 교육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서울대학교 개교 당시 대학을 휩쓸고 있던 소위 국대안찬반운동(國大案贊反運動)이라는 소란의 와중에서도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려는 불어불문학과의 노력은, 동숭동의 문리과대학 동부 연구실의 조그만 산실에서 책과 씨름하는 학생들의 열정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고, 드디어 1947년에는 최초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점점 늘어가는 신입생을 맞이하여 빛나는 앞날의 밑그림을 그리며 대학이 사회와 연관을 이루기 시작하던 때, 민족의 비극인 6•25사변이 일어나 서울대학교는 물론 불어불문학과의 구성원들도 동란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수난을 겪으며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란의 종료와 더불어, 격랑을 헤쳐온 불어불문학과는 서울로 복귀해 새로이 김붕구(1954), 오현우(1956) 교수를 모시면서 진용을 정비하고 체계를 갖춘 과로 60년대의 비약을 준비하게 된다. 이제 짧기만 했던 해방의 공간을 지나, 또다시 전쟁의 폐허라는 민족사의 험로를 걸어야 했던 학생들은 학구열을 드높이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데 길잡이를 얻게 되었다. 한국불어불문학회의 창립과 1965년도에 창간호를 발간한 불어불문학회지로 구체화된 졸업생들의 탐구 노력은 70년대 이후의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는 물론, 한국 불어불문학계 전체의 비약적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1975년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에 따라 30년 동안 정들었던 동숭동 교정을 떠나 관악산 기슭으로 옮긴 불어불문학과는 연구와 강의 공간의 이동이라는 외형적 변화만을 겪은 것이 아니었다.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으로 문리과 대학이 인문대학, 사회대학, 자연대학으로 개편되면서, 그동안 여타 단과대학에 소속되어 있던 불어불문학과 전공 교수들이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로 합류한 것이다. 이미 동숭동 시절부터 홍승오(1967), 정지영(1969) 교수 등의 초빙으로 이미 다섯 분의 전임 교수들이 교편을 담당하고 있던 불어불문학과는, 사범대학에서 강의하던 이환, 유평근 교수와 교양학부에서 강의하던 정명환, 원윤수, 김광남 교수 등이 참여함으로써, 더욱 세분화된 전공 분야의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학생들에게는 보다 수준 높은 강의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두터워진 연구 인력은 80년대 들어 후학 동문들과 함께 그동안의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서농 이휘영(1980) 교수와 석담 김붕구(1982) 교수 그리고 섭천 오현우(1984) 교수에게 회갑 기념 논문집을, 또 90년대 들어서는 이환 교수에게 정년 기념 논문집을 발간•증명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휘영(1919-1986) 교수와 김붕구(1922-1991) 교수는 정년 퇴임 후 이미 유명을 달리하셨고, 오현우(1988) 교수와 이환(1995) 교수도 정년 퇴임을 맞이하는 사이, 정명환 교수는 성심여자대학교로, 또 관악 교정으로 옮겨온 뒤에 새로이 부임한 최승언 교수는 파리7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는가 하면, 한국문학 비평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김광남(필명 김현, 1942-1990) 교수가 재임 도중 타계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어 홍승오 (1998), 원윤수(2001), 정지영(2002), 유평근(2004) 교수가 차례로 정년을 맞았으나, 한편으로는 이동렬(1982), 오생근(1984), 장재성(1985), 홍재성(1988), 이인성(1989), 이건우(1993), 최권행(1996), 유호식(1999), 김정희(2002), 이성헌(2003), 이영목(2005) 교수 등으로 충원된 불어불문학과는 이제 정원 11명의 전임교수가 불어학에 기반을 둔 언어학의 여러 분야는 물론,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는 불문학의 모든 장르를 연구•강의할 수 있는 성장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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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최초의 학부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매년 20명 정도의 신입생을 선발하던 불어불문학과는 80년대 초 교육 변혁을 통해 한동안 70명에 달하는 신입생을 선발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매년 30명씩 선발하여 학부과정 재학생에게 불어학과 불문학은 물론, 프랑스 문화 전반에 대한 강의를 베풀고 있다. 한편, 1957년 최초의 석사 학위가 수여된 이래, 이미 발표된 학위논문 수만도 200여 편을 상회하는 대학원 석사과정은 매년 10여 명 이상의 신입생을 선발할 정도로 성장하였으며, 특히 관악 캠퍼스로 옮겨온 이후로는 불어불문학과를 연구와 강의가 균형을 이룬 과로 바꾸어가는 견인차 노릇을 해오고 있다. 또 1974년 첫 박사 학위를 수여한 이래 이미 40여명의 학위 수여자를 배출한 박사 과정도 이제 신진 학자들이 축적해 온 연구 업적에 힘입어 학문 후속 세대 양성의 온상으로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렇게 배출된 졸업생들은 사회의 중추적인 분야에서 헌신하고 특히 우리 인문학 발전을 위해 주력하고 있는 학계와 문화•예술계를 주요활동 무대로 삼고 있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생들은 한국 불어불문학계의 명실상부한 중추로서 전국 각지에 대부분의 불어불문학과를 설립하다시피 하였으며, 현재 100여 명을 훨씬 넘어서는 졸업생들이 각 대학 불어불문학과의 전임교수로 재직하여 학계를 이끌고 있다. 또 졸업생들 가운데에는 불어불문학뿐 아니라 국문학, 철학, 신문방송학, 정치학, 경제학, 연극영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편을 잡아 탁월한 연구 성과를 이룩하여 한국 지성계 전반의 편향된 시야를 교정하며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임무를 수행하고 문단은 물론 각종 예술 분야에서 활발한 창작과 비평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외교, 무역, 실무 등과 같이 전세계로 펼쳐져 있는 불어 사용 지역과의 관계를 맺는 분야는 물론 각종 언론 매체 등 불어 구사 능력을 요구하는 분야이면 어디에서나, 이들의 눈부신 활동을 볼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선 불어불문학과는 앞서 언급된 학문적 역량의 축적 외에 불어문화권 연구소의 활동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설된 이래 오랫동안 불어불문학과는 주로 순수 학문 차원에서 불어학과 불문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데 모든 정열을 쏟아왔으나 졸업생들의 다양한 진로가 보여주듯, 불어불문학과에서 수학하고 있는 학생들의 다방면에 걸친 자질과 잠재적 능력이 만개될 수 있는 무대가 불어학과 불문학 분야에 한정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1989년 인문대학 부설 불어문화권 연구소를 개설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이들이 느끼는 문화적 이질성과 언어 장벽을 다소나마 해소시킴으로써, 보다 깊이 있는 불어불문학의 연구와 강의의 모색이라는 교육적 고려가 연구소 창설의 가장 우선적인 이유였다. 여기에 반세기의 역사를 뒤로하는 불어불문학과에 대한 시대적 요청도 있었다. 이제 새로운 세기를 준비함에 있어, 더 이상 프랑스라는 한 나라의 개별 문화의 연구와 일방적 소개가 아니라, 전세계로 확대되어 있는 불어권 지역 전체로 연구의 대상을 확대하여 우리 시야를 계속 넓혀 가야 한다는 요청이 바로 그것이다. 또 우리의 독자적인 문화를 전세계 불어 문화권역에 소개하여야 한다는 것 또한 불어불문학과에 주어진 또다른 시대적 요청이다. 해방 이후 50년에 걸친 서구 문화의 비판적 수용 단계를 넘어, 그동안 축적된 우리의 학문적 역량에 기초한 독자적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평가해야 한다는 능동적 움직임이 바로 불어문화권 연구소의 창설 이념이고, 이는 다양성의 요구에의 부응이라는 불어불문학과의 창설 이념의 발전적 실천이다.

이를 위해 연구소는 개소 이래 프랑스뿐만 아니라 캐나다, 벨기에, 모로코는 물론, 독일 등지의 유수한 불어학자, 불문학자, 역사학자, 정치학자 등의 학계 인사와 교육 전문가, 각국의 전•현직 장관 및 대사 등의 고위 외교관을 비롯한 다양한 인사들을 초청해 강연회와 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불어불문학과 학생은 물론, 서울대학교 구성원들에게 전세계에 펼쳐져 있는 불어문화권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또 이들과 공통의 관심사를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불어문화권은 물론, 세계 전체가 직면해 있는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매년 프랑스와 불어문화권 지역으로부터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을 초빙하는 등 연구소는 각급 연구원들의 해외 파견을 통해 각종 불어불문학 및 불어문화권과 연관된 학술 대회에의 참여를 유도해 왔다. 연구소 소속 교수들의 15차에 걸친 국제 회의 참가 및 논문 발표 외에도, 대학원 학생들에게 프랑스와 캐나다 등 각국의 대학과 교육 기관에 장•단기 연수의 기회를 제공하여, 이미 개소 이래 16명에 달하는 연구생을 파견하였다. 또 1991년 서울대학교와 프랑스의 국립사회과학대학원(E.H.E.S.S.) 사이의 교류 협정을 체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불어문화권 연구소는 1994년 프랑스의 국제교육연구소(C.I.E.P.)와 교류 협정을 자체적으로 체결한 바 있고, 지금도 프랑스는 물론 캐나다를 비롯한 전세계의 대학들로부터 교류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첫 입학생을 맞은 지 50년을 넘기고 있는 불어불문학과는 새로운 시대를 다양성의 시각에서 준비한다는 창설 이념에 따라, 이와 같은 연구소의 활동뿐 아니라, 새로운 교과 과정을 확정해 2002학년도 신입생을 맞이하였다. 앞서 밝힌 대로,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갈 주역들을 양성함에 있어 만전을 기하기 위해, 과는 실천적인 방향으로의 교과 과정 개정을 통해 불어불문학은 물론, 프랑스 문화 전반,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전세계 불어문화권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제고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불어불문학과 30년사 에서 발췌